인체는 다섯 종류의 감각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이 포함되며 이들을 합쳐서 “오감(五感)”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관(五官)으로 느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감각, 사물의 신비나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마음의 기능을 여섯 번째 감각이라 하여 “육감(六感)”이라고 부르지만 그 실재성은 불명확하다.
인체의 평형기능, 특히 전정감각은 이런 의미에서 오감 이외의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정감각은 양쪽 귀 속의 내이(內耳)에서 느끼는 감각으로 인체, 정확히 말하면 머리의 회전운동과 직선운동을 감지한다. 반고리관에서는 모든 평면에서의 회전운동을 느끼며, 전정(前庭)에서는 중력을 포함하는 직선가속도를 감지한다. 이런 전정기관에서 감지된 신호는 신경을 통해 중추, 특히 뇌간과 소뇌에서 처리되고 이는 안구나 팔, 다리의 근육으로 보내진다.
평형을 하나의 감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중반이 되어서인데, 이전까지 전정감각을 하나의 감각으로 인식하지 못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전정감각은 인체가 움직이고 평형을 유지하는데 너무나도 기본적인 감각이고 작용하는 시간도 24시간 내내 지속되므로 보통 사람들은 그 존재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기능이 정상적일 때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지만 기능이 망가졌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앞이 핑핑 돌고 토하며 서 있기 힘들어지면 그때야 전정기관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인체가 전정감각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쉽게 상상이 가지 않지만 우리는 한 단면을 주위에서 접할 수 있다. 비디오 카메라를 찍을 때 주의해야 하는 점에는 카메라가 되도록이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장면을 찍는데 걸어가면서 찍는 경우 나중에 찍은 것을 보면 걸음에 따라 장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다. 이런 필름을 오래 보고 있으면 어지러워지고 속도 메슥해진다. 우리가 걸어다닐 때 물체가 심하게 흔들려 보이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전정기관의 작동에 의한 것이다. 머리의 흔들림에 따라 적당한 눈의 움직임을 유발하여 시야가 흔들리지 않게 한다. 만약에 전정기능이 전혀 없는 경우 환자는 세상을 흔들리는 비디오로 찍은 것처럼 보게 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대부분의 감각기관이 둔한 편이다. 시각이나 후각, 청각 등 우리 주변에 보이는 동물들이 인간보다 훨씬 예민하다. 그러나 전정감각만은 예외로 인간이 다른 대부분의 동물들보다 예민하고 발달되어 있다. 인간이 다른 포유류 동물들과 달리 두 발로 직립하여 걷고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이렇게 고도로 발달되어 있는 전정감각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며 인체의 오감을 기계가 대치하거나 또는 오감의 기능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분야가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 중에는 기술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데도 있다. 그러나 인체의 전정감각을 대치하려는 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그 이유는 인체의 전정기능이 감각기관과 중추신경계, 운동기관들의 매우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상호작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The Sixth Sense`라는 외국영화가 인기가 있었던 것을 보면, 평형유지의 주된 역할을 담당하는 전정감각을 인체가 느끼는 필수 감각으로 인식하지 못하기는 동, 서양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중요성이나 우리 생활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면 전정감각은 여섯 번째 또는 일곱 번째 감각이 아니라 오감이 있기 전에 존재하는 영(0)순위의 감각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 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