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시간
오시는길
둘러보기

logo

  홈 로그인 멤버 사이트맵
   
   
 
보도자료
news
   
 
   
 
Home > 보도자료 > 칼럼  
 
 제   목 몽골 진료봉사를 다녀와서
 작 성 자 송병호
 조    회 2,300
 등 록 일 2010-01-02
라파엘 인터내셔널은 2007년에 설립된 해외진료 봉사단체이다. 1997년부터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무료진료 및 구호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라파엘클리닉이 모태이다.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바탕으로 저개발국가 주민들에게 보건위생교육 및 무료진료사업, 현지 의료진 교육 연수 등의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몽골에서는 2008년도 봄, 가을에 진료봉사를 하였고, 이번은 3회째로 나는 올해 초부터 5월 봉사에는 참가하겠다고 뜻을 전달하였다. 미국이나 유럽은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 국가에 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몽골에 대해서는 가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우리 선조들이 고대에 몽골, 만주 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왔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몽골에 더 친근함이 느껴진다.

봉사단은 총 23명이었고,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안과, 이비인후과 진료를 계획하였다. 5월 1일부터 4일까지 진료를 하고 5월 5일은 몽골문화체험, 그리고 6일 새벽에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비자를 얻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몽골정부에서는 진료봉사를 금하지는 않지만, 약품들을 반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한다. 사실 4일간 필요한 여러 약품들을 휴대하고 대량으로 세관을 통과하는데 절차가 필요할 것 같았다. 실무지원팀에서 조치를 잘 취했는지 별 무리 없이 통과할 수가 있었다. 각자의 여행가방 외에 약품가방을 하나씩 들고 출국절차를 밟아야 하였다. 4월 30일 오후 8시 10분 대한항공편을 이용하여 울란바토르로 향하였다. 같은 비행기편에 우리처럼 진료봉사 가는 팀들이 많이 보였다. 몽골에는 세계 각지에서 진료봉사 오는 팀들이 많다고 한다. 구미 각국, 일본, 한국 등인데, 최근에는 한국에서 많은 봉사단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봉사단들이 몰려 오기 때문에 봉사 기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라파엘 팀은 좀 한가한 봄, 가을철로 정기 봉사 일정을 잡고 있다. 징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10시였다. 한 시간의 시차가 있으므로 3시간이 걸린 셈이다. 몽골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낮에 한국에서 일을 보고 저녁 먹고 비행기를 타면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이니 가까운 거리이다. 울란바토르의 징기스칸 공항은 몽골의 유일한 국제공항인데 규모로 보면 우리나라의 지방에 있는 국내선 공항 정도이고, 취항하고 있는 해외항공사도 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미리 가 있던 선발대가 버스를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옮겨 싣고 우리가 묵을 호텔로 향하였다. Delgerekh 호텔인데, 주위에 다른 호텔이나 주거지 등은 보이지 않는 아주 황막한 곳에 서 있는 3층 건물이었다. 봉사단원 1인단 자비로 80만원을 내고 참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5일 일정에 편안한 곳에 묵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샤워도 할 수 있는 방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영준이를 데려갔기 때문에 둘이서 한 방을 사용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잠이 깨어서 호텔 밖으로 나가 보니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는 2차선인데 중앙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 아침은 간단히 수프, 빵, 우유로 먹고 진료소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날씨는 춥지 않고, 낮에는 반팔차림으로 지낼 수 있는 정도였다.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대개의 도로에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고, 신호등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큰 언덕도 보이지만, 나무들이 없었다. 언덕은 마른 건초로 덥혀 있었고, 시내에도 가로수가 별로 없어서 메마른 느낌인데, 실제로 물이 부족하여서 매우 아껴서 써야 한다고 한다. 항올 야르막 지구에 있는 진료소에 도착하였다. 공립병원인데, 우리 나라의 30년 전 시립병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외부에는 벌써 많은 환자들이 줄을 서서 접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발대에서 성공적으로 홍보를 한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봉사를 갔는데, 흥행에 실패한다면 그도 기운 빠지는 일이 될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능숙하게 약국에 약품들을 풀고 나는 2층에 있는 이비인후과 진료실로 올라갔다. 놀랍게도 내과 진료실처럼 되어 있는데, 실제로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는 곳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비인후과 진료 유니트가 없다는 것이고 치료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일반의자를 마주 놓고 환자를 앉힌 다음에 휴대용 이경, 헤드라이트를 이용하여 진찰을 하고 약을 처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의료기 회사에서 내시경과 광원을 협찬한다고 하였는데, 막상 와 보니, 내시경만 있고 광원이 오질 않아서 한국에 전화를 하여서 하루 뒤에 들어오는 선생님께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때까지는 후두도 미러를 사용하여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국에서 준비하는 약품목록에 항생제, 항히스타민제, 진해거담제, 해열진통소염제, otic drop, steroid nasal spray 등이 준비되어 있어서 약을 처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봉사단원 중 이혜경간호사가 진료를 도와주었고, 한국어과 4학년인 몽골 여대생 엥흐마씨가 통역을 해 주었다. 한국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발음이 상당히 정확하였고, 편하게 대화를 할 수가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엥흐마씨는 한국어가 몽골어와 문법이 같아서 어렵지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몽골어에는 우리 말에 없는 발음이 있어서 처음 말을 익히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일본어를 배우기는 쉬워도 일본인이 한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지리 역사적으로 볼 때 선조들이 살던 알타이 지방에서 멀어질수록 발음이 단순화되어 간 것으로 추정된다.

4일간 진료한 이비인후과 환자수는 총 270명으로 남자 81명, 여자 189명이었다. 진료를 할수록 일일 진료환자수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첫날 오전은 환자의 증례 진단을 정리하지 못하여 자료 분석상 미비점이 있었다. 오후부터 진료장부를 기입하여 4일간에 걸쳐서 분석해 보았다.
귀 분야에서는 만성중이염이 압도적으로 많아 38명의 환자를 보았다. 그 외 급성중이염이 13명이었고, 노인성 난청이 18명이었다. 코 분야에서는 만성부비동염이 많아 40례, 두번째로 알러지비염이 37례였다. 두경부 분야에서는 만성편도염이 많아 26명이었고, 역류성후두염이 15명이었다. 기후와 식생활,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서 질병의 양상이 좌우됨을 알 수가 있었다. 겨울에는 영하 50도까지도 내려가고 여름에는 30도 이상 기온이 올라간다고 한다. 봄 가을엔 일교차도 심하니, 어릴 때 감기 등으로 인해서 부비동염이나 중이염에 걸리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만성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되어서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아직은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질병을 가진 상태로 지내는 환자들이 많다. 또한 채식보다는 육식을 하는 식단이므로 비만, 고혈압 등의 내과적 질환이 많고, 역류성 후두염 환자들이 상당히 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환자들 중에는 고혈압을 방치하다가 뇌졸중이 발생하여 마비가 오는 환자들이 많았다.

바쁘게 진료를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도시락 3개가 진료실로 배달되었다. 한국에서 먹는 도시락과 비슷하였는데, 시내에 있는 한국음식점에 주문을 하였다고 한다. 통역인 엥흐마씨도 잘 먹는 것 같았다. 커피 한잔을 하면서 쉬는 시간이 참 달콤하다. 엥흐마씨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는데, 한국어과에 들어가려면 공부를 잘 하여야 한다고 한다. 울란바토르대학교와 몽골기술대학교에 한국어과가 있고 한 학년에 4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엥흐마씨는 한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몽골과 한국의 교류가 더욱 증가할 것이고, 이런 학생들이 진학과 취직에 유리해 질 것으로 생각된다.
오후 진료가 끝나가니 이제 또 저녁이 기다려진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큰 호텔이 있었는데 그 안에 한식당이 있었다. 즐거운 저녁시간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서 잠을 청하였다. 둘째날은 평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메뉴 중에 단고기가 있는데, 보신탕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며 직원들은 모두 북한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술도 북한술이 준비되어 있다. 처음으로 마셔 본 평양소주는 25도이다. 학생 때 마시던 25도 진로소주와 맛이 거의 같아서 반가왔다. 시내에도 곳곳에 한식당이 있어서 한국사람이 살기에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여러 시설이 아직은 건설 중이어서 곳곳이 공사장이었고, 수많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공산주의를 청산하고 지금은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공화제라고 한다. 개방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 들여서 해외 자본들도 많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수일에 걸쳐서 진료하고 약을 나누어 주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몽골의 의료수준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일단은 무엇보다도 이비인후과 진료유니트 체어가 필요하다.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오백만원의 후원금을 확보하고 메가메디칼에서 반값에 장비를 공급하여서 8월에 진료소로 공수하였다. 몽골의료진이 매일 그 장비를 이용하여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몽골인들의 식생활 특성상 역류성 후두염이 많으므로 그에 대한 식생활 교육이 필요하고, 만성질환인 알러지비염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향후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질환에 대해서는 몽골말로 브로셔 등을 제작하여 나누어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성부비동염, 만성중이염 등과 같이 수술이 필요한 만성 질환자를 위해서는 일회성 수술지원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몽골 이비인후과의사가 한국에서 연수를 받고 몽골의 병원에서 활발히 수술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마침 몽골의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Byambasuren 박사가 9월부터 3개월간 서울대병원과 미래이비인후과에서 연수를 하여서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서울대학교병원 KS병원 에스더클리닉 지디스내과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길